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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대산지오텍(주) 이종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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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장관 안경덕)한국산업인력공단(이사장 어수봉)은 대산지오텍(주) 이종량 대표를 2021년 8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하고 112일 세종청사에서 시상식을 열어 고용노동부장관 증서를 수여했다.

 

이달의 기능한국인 숙련기술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숙련기술인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20068부터 매월 한 명씩 선정(20219월 말 기준 175명 선정)하고 있다.

 

직업계 학교 등을 졸업하고 산업현장에서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사람 가운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숙련기술인이 대상이다.

 

8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대산지오텍() 이종량 대표는 정밀기계 가공기술을 보유한 숙련기술자로, 자동차 부품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첨단제품 제조장비의 부품을 개발하는 개발자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고용노동부

 

고등학교 졸업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실력을 다져온 이 대표는 2010년 창업 이래 꾸준히 회사를 키워왔고, 지금은 7,192의 부지에 공장과 연구소를 설립해 설계에서부터 소재, 가공,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술연구소 설립 이후 공정개선용 JIG(부품가공 보조기구) 등 기술을 개발해 5건의 특허를 보유 중이다. 2016년부터는 수출을 시작해 2017년 경기도 수출프론티어 IT분야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이 대표는 디스플레이 패널을 생산하는 설비 중 CF노광기의 핵심이 되는 초정밀 기초부품 가공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 10여 년 전부터 국내 대기업에 독점적으로 공급을 하고 있다.

CF노광기: LCD의 화질을 구현하는 데 쓰이는 컬러필터(Color Filter)를 만드는 핵심 장비

 

해마다 모교 졸업생 3~5명을 채용하고 장학금 지급과 기부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는 이 대표는 공장도, 기계도 없이 기술력만 갖고 창업했지만, 주변의 도움 덕분에 기능한국인의 영광까지 얻었다.”라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정진해, 숙련기술자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기업인이 되겠다.”라고 기능한국인 선정 소회를 밝혔다.

 

대산지오텍(주) 이종량 대표 인터뷰 주요 내용

 

「이달의 기능 한국인」 174번째 선정자 대산지오텍(주) 이종량 대표는 정밀기계 가공기술로 잔뼈가 굵은 기능인이자, 부품개발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후 2010년 회사를 창업했다. 현재 평판 디스플레이장비와 반도체장비, 레이저장비 등을 개발해 국내외 장비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 IMF 구조조정 칼바람도 비켜간 실력


1968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중학교 졸업 후 부산기계공고 선반과로 진학했다. 선반을 택한 것은 선반이 ‘공작기계의 아버지’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졸업과 동시에 기장에 있는 대우정밀에 입사했다. 초창기 자동차 엔진 부품 분야 일을 주로 했었다. 하지만 처음 5∼6년 동안은 부서를 옮겨 다니며 허드렛일만 해야 했다. 93년 5월 새로운 팀이 구성되면서 차출돼 NC(Numerical Control; 수치제어식 공작기계)를 배웠다. 기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이 대표는 작업속도가 빨랐고, 새로운 아이템을 맡겨도 거뜬히 해냈다. 연말이 다가올 무렵, 총기부품 외주를 줬던 업체에서 대거 불량이 발생했다. 납기일이 코앞이라, 회사에서 자체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는 무사히 납기일을 맞췄고, 그 이후 새로운 아이템 개발 등에 자주 차출됐다. 1997년 말 닥친 외환위기로 IMF 구조조정의 칼날은 매서웠고, 명퇴가 이어졌다. 이 대표도 명퇴를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반려했다. 회사에서 꼭 필요한 인재이니 내보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 창업, 미래를 위한 도전

 

2001년 대우정밀을 나왔다. 거대한 조직 속 작은 부품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퇴사를 결심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과장으로 합류해 첫해 동안 거의 350일 이상을 출근했다. 처음 이 대표가 합류했을 때 회사는 어려웠다. 약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일은 거의 이 대표가 도맡아 하다시피 해서 매출을 30배 이상 키우면서 보람도 같이 느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공장장, 전무이사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하지만 오너가 아닌 상황에서 회사와 조직원들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모험을 결정, 약 10년 동안 같이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2010년 1월 대산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첫 해 4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몇 년 전에 같이 일했던 직원 세 명과 함께 이뤄낸 성과였다. 2012년 공장을 이전하면서 법인으로 전환하고, 설비도 대거 투자했다. 자동차 외에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제조장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2013년 연구소를 설립해 공정개선용 JIG(보조기구) 등 5개의 기술을 개발, 특허를 보유 중이다. 2016년 수출을 시작해 이듬해 경기도 수출프론티어 IT분야 신인상을 수상했다.

 

■ “기업의 최종 목표는 사회 환원”

 

이 대표는 해마다 모교인 부산기계공고 졸업생 3∼5명을 회사에 채용하고 있다. 또 모교에 매년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후배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기술을 배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또 화성시 복합복지타운 나래울과 장애인인권센터, (사)아이길벗, 대한적십자사 등에도 꾸준히 기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 대표는 “기업의 최종 목표는 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한다”며 “금전이든, 기술이든 축적이 되면, 도움이 필요한 곳이나 후배들을 위해 환원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 저작물은 고용노동부에서 '2021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보도자료를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정책브리핑 사이트  www.korea.kr 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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